이번 시위에 대해서 경찰차를 부수는 등 폭동수준이었다는 선동(뉴라이트와 일베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선동.)이 떠돌기에 제가 아는 선에서 설명을 드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일단 배경이 되는 지역부터 설명을 드리죠.
붉은 색이 시청앞 광장 지역입니다.
초록색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농성하면서, 분향소를 차렸던 광화문 광장 입니다.
파란색은 광화문 바로 앞입니다.
자 그럼 바로 설명들어가겠습니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였는데요, 평일이라서 저녁 7시부터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평일 저녁의 시위였음에도, 당시 시위를 찍은 사진을 보면 대략 5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서울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4월 16일 밤의 서울광장. 이 사진의 아랫부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사진 크기상 짤려있습니다.)
이 시위는 추모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국화꽃을 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9시즈음 집회가 끝나고 나서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텐트 및 분향소로 이동해서 그 분향소에서 헌화를 하자고 했습니다.
당시 시위의 분위기는 정부에 대해서 비판을 하면서도 1주기라는 의미가 가지는 경건함도 함께 있어서 차분한 분위기에서 분향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이미 시위대가 광화문 광장으로 가서 유족들을 위로하고 분향하러 갈 것을 예측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시위대는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서 경찰이 광화문광장으로 가는 길에 박아둔 차벽을 발견합니다. 물론 인도까지 꽉 막힌 상태였습니다. 차벽과 전경들로 가득차서는 광화문으로 향하는 것을 철저히 막았죠. 언론에서는 이날 밤에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3중차벽을 만들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시위를 봤던 저는 1차 벽을 골목길로 우회했지만 2차벽(차벽+전경)에서 막혔기에 제가 확인한 것은 2중 차벽까지 입니다.)
여하튼 시위를 마치고 유족들을 만난 후에 분향을 하겠다는 것을 경찰이 강력하게 저지하자 사람들이 분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충돌이 일어나서 시위대가 경찰을 밀치고, 경찰도 시위대를 밀치거나 캡사이신이 들어간 물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경찰이 시위대가 광화문광장으로 가는 것을 폴리스라인을 쳐서 질서잡힌 형세에서 들어가게 해주면 별 문제 없이 끝날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서울광장에서 시위를 할때도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쳐서, 혼잡한 광장을 피해 차도로 걸어다니거나 서있는 시위대를 보호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시위를 방해하지만 않으면 시위대도 경찰을 공격하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바라는 선진국 시위처럼 질서정연하게, 충돌없이 끝날 수 있는 시위였죠.
하지만 경찰은 광화문 광장을 청와대라는 되는냥 절대적으로 진입을 막으려고 했고, 이것때문에 시위대가 종로로 들어서는등 오히려 막심한 교통체증만 유발한 셈입니다.
저는 사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원인제공을 했다고 봅니다. 교통체증이나 경찰과 시위대의 불필요한 충돌 등 모든 부분을 생각했을때 경찰의 행위는 이해가 안갑니다. 경찰의 행위를 이해가게 하는건 딱 한가지 입니다. 정권안보. 세월호 유가족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이미 하나의 상징이 된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분향하는 것이 만들어낼 하나의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이 만들어올 정치적 영향력과 정권에 대한 타격만이 경찰의 이 무리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4월 16일 밤의 시위는 이렇게 경찰들의 3중 차벽을 뚫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날 밤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가려는 유가족 과 일부 시위대가 광화문 바로 앞에서 고립된 겁니다.
이 사진을 잘 보시면 경찰 차벽으로 광화문을 에워싸고 있고, 그 안에 선 사람들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거기에 고립된 이들이 유가족들입니다. 이 사진은 4월 18일 오후의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2박 3일간 유가족들이 광화문 앞에 갇혀있던 것입니다. 경찰은 이들이 광화문광장으로 가지 못하게 막고, 또는 무리로 이동하는걸 막았습니다. 분노한 유가족들은 경찰에 맞서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겨우 100여명인 이들을 광화문광장으로 가게 냅둬도 큰 문제가 발생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광화문 광장의 분향소를 완전히 차단하려고 한 것입니다.
유가족들은 이런 상황에 분노해서, 한명씩 따로 귀가하게해서 해산시키려는 경찰의 말에 따르지 않고 그자리에서 농성을 벌입니다. 그러자 이들에게 식사와 물을 주려는 것조차 경찰이 막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조차 막아서 유가족들이 노상에서 용변을 처리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은 보도되었고, 4월 18일 오후 3시에 예정된 시위에 참가할 시민들에게도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이번에는 또다시 차벽을 쳤습니다.
이게 4월 18일의 차벽입니다. 사진의 우측 하단에 옥상부분이 보이는 건물이 옛 서울시청입니다. 그리고 사진 맨 위에 광화문과 경복궁이 보이지요. 그 사이에 차벽이 무려 5중으로 쳐져 있습니다. 이제 이 5중차벽의 목표는 광화문광장의 분향소 차단 뿐만이 아니라, 광화문 앞에 고립된 시위대를 끝까지 고립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경찰의 행위는 시민들이 유가족들을 만나거나, 경찰로부터 구출하는 그림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설명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상황에 분노한 시위대는 경찰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경찰도 이들에게 거침없이 힘을 썼습니다.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든 물을 아낌없이 뿌리는 경찰들과 이를 맞는 시위대의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날 저녁 11시경에 드디어 5중 차벽을 뚫고 고립된 유가족들을 만납니다.
비록 여기에서 다 못썼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유가족, 시민, 경찰 들이 다쳤고, 또 많은 경찰 버스들이 피해를 입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황의 맥락을 되짚어보면, 경찰이 충분히 차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위를 지나치게 억압했고, 이것이 오히려 더 큰 충돌로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경찰의 폭력적인 억압에 순종했다면,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누리는 진정한 민주시민이라고 보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행사였다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경찰버스를 손상한 것은 '팩트'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맥락이 상실된 팩트는 진실을 왜곡하는 수사에 불과합니다.
일례로, 일본 정치인들이 안중근 의사를 살인범이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살인한 것은 '팩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하고, 진실된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에 벌인 수많은 행동들, 그리고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일본의 한국침략에 분노하고, 이에 항의하고자 총을 쏜 안중근 의사의 행위에 깔린 그 맥락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진실이 보입니다.
4월 16일에서 4월 18일까지 이어진 세월호 관련 시위도 우리는 맥락을 짚어보면서 진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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