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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Positive51 2014. 4. 25. 11:30
-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2003년 3월 중순, 대통령이 4월에 있을 국회 연설문을 준비할 사람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직접 쓸 사람’을 보자고 했다. 윤태영 연설비서관과 함께 관저로 올라 갔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과 독대하다시피 하면서 저 녁식사를 같이 하다니.

이전 대통령은 비서실장 혹은 공보수석과 얘 기하고, 그 지시내용을 비서실장이 수석에게, 수석은 비서관에게,

비서관은 행정관에게 줄줄이 내려 보내면, 그 내용을 들은 행정관이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 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이었 다고나 할까?

아무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를 원했다.

“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 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한 내 가 좀 눈이 높거든.”

식사까지 하면서 2시간 가까이 ‘연설문을 어 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이어졌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 랐다. 열심히 받아쓰기를 했다.

이후에도 연설문 관련 회의 도중에 간간이 글 쓰기에 관한 지침을 줬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 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그런 표현방 식은 차차 알게 될 걸세.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 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 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 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 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의 연 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 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추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추켜세우 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 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 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을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 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뒤는 잘 안 보 네. 문단의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그 뒤에 설 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 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 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 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몰아주게. 이곳 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백화점식 나열보다는 강조할 것은 강조하 고 줄일 것은 과감히 줄여서 입체적으로 구성 했으면 좋겠네.
29.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이 쓰는 것이 좋네. 영토 보다는 땅, 치하 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 을까? 30.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좋은 쓰려다가 논 리가 틀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네.
31.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 네. 32.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 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3.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 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대통령은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이 얘기 속에 글쓰기의 모든 답이 들어있다.


지금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언젠가는 음식에 비유해서 글쓰기에 대해 얘 기한 적이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 부 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 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에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 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 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 놓으면 정작 메인 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 거든.
6. 메인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 이면 해장국, 아구찜이면 아구찜. 한정식 같이 이것저것 다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 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잖아. 글도 오락가 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 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 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줄 알고 갔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이 글마다 다 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 면 곤란하지. 글도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승부 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보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 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 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이날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앞이 캄캄 했다.


이런 분을 어떻게 모시나.


실제로 대통령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글을 요 구했다. 대통령은 또한 스스로 그런 글을 써서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 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 이 되겠다고.


대통령은 깐깐한 선생님처럼 임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설비서실에서 쓴 초안에 대해 단번에 오케이 한적이 없다.


출처 : 텐인텐[10년 10억 만들기]
글쓴이 : Hyo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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