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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읽다.

Positive51 2016. 3. 9. 09:21

2016년 3월 08일


드디어 12권의 소설 아리랑을 다 읽었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 수 있었으나

업무에 가정사에 운동에 게임 등산 등 취미생활 등을 우선 하고

신체적 정신적 여유가 생길때나

특히 도서관 대여기일이 다가왔을 때 부랴부랴 읽어

그렇게 도서관 대여기간인 2주(보름)에 1권씩, 한달에 두권씩을 읽어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작년 9월 중후반이나 10월부터 읽어 내려간 것이로군..

물론 12권이라는 분량이 처음부터 많게는 느껴졌으나,

이렇게 거의 반년이나 걸리게 될 줄은 몰랐다.

아리랑만 읽을 생각이었으면 그도 괜찮았지만

난 처음부터 소설 시대의 순서에 따라

아리랑 → 태백산맥 → 한강을 이렇게 순서에 따라 모두 읽고자 했다.

헌데 아리랑만으로 반년이 걸렸으니.. 나머지 소설을 다 읽는것도

올해는 채우고도 부족할 듯 싶다.


따라서 이것을 가급적 빨리 모두 다 정독하려면

아마도 게임같은 요즘 정신세계가 불편해진 취미 부분은 빼야 맞지 싶은데

또 그것은 그것대로 소중한 목적이 있는지라 ㅎㅎ

아무튼 내가 무엇을 하든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특히 주말에 잠으로 소일하는 부분을 줄인다면 어떨까?

처음으로 아리랑 덕에 동네 도서관의 공부방에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도 꽤 재미있고 집중이 잘 되어 좋다.


나의 다양한 취미생활 덕에 가정일을 하는것과 아이들 보육 등은 

다소 도움을 주지 못해 아내의 언성이 나날이 높아가는 부분도 주의해야 한다. ㅎㅎ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소설 아리랑을 읽어보시길 권유한다.

그것은 우리가 일제로부터 어떻게 핍박을 받았는가에 대해

아주 사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충격적인 수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조각조각

빼먹지 않고 보고 느끼게 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가장 재미있어 한 부분은

다양한 인물이 피해갈 수 없이 다가온 격동의 시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처지에서

어떻게 살아가지는가의 일에 대한 관찰이다.


특히 가장 힘없는 위치에 있는 농민들(민초)의 삶은

이 시대에 나의 삶의 위치와 거의 동일하게 관련되어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음으로써 더욱 와닿는 일들이 많았다.


나는 과연 일제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의병이나 독립군이 될 수 있을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솔직히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해낸 고통의 정도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그들이 당해낸 좌절과 패배의식과 인고의 세월이 너무나 길기 때문이다.


사람이란게 힘들고 괴로워도 그 끝이 보이고

그 끝이 긍정이라면 인내하며 살아갈진데

시대가 가면 갈수록 암흑이고 좌절이고 당장의 고통도 매우 큰데

그 고통의 끝도 보이지 않고 갈수록 암울해진다면 그것을

어떤 위인이 견뎌낼 것인가?

결국 그 끝에는 우리 자신의 힘이라기 보다

더 강한 존재의 힘에 의해 해방을 맞았다는 부분,

그리고 현재의 역사는 그 강한 힘에 의해

우리의 역사가 많이 구성되어 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때

또 하나의 좌절을 느끼게 된 것이다.


현 시점에서 나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작이자 끝이라면

어쩌면 용기있게 나는 무엇이든 의지에 따라 노력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소설 아리랑을 통해 나 한세대의 일이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게도

매우 인고의 수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했을 때

차마 내 용기와 의지만으로는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었다.


보다 영리하게 보다 지속적으로 할 수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것은 그 전에 우리가 다른이들로부터 당하지 않게

기본적인 힘의 우위 내지 최소한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겠다.


내가 아무리 평화주의자이면 무얼 하겠는가?

내가 힘이 없어 보다 강한 다른이들이

나의 것을 빼앗고 나의 머리를 자신들의 발아래 두면서

나를 마음껏 유린하고 부려먹고 마지막엔 쓰레기 버려지듯

버릴 수 있을 것 인데!


나는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거의 전해들은 바 없는

나의 친조부에 대하여 매우 궁금해졌다.

그 분이야말로 일제시대는 물론 6.25사변 등 정말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분인데

과연 우리 친조부와 증조부는 어떤 위치에서 어떤 삶을 살으셨고

그분들의 삶의 결과에 따라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그것은 또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는데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조부에 대해 전해들은 바가 거의 없어 안타깝다..

분명한건 전주 이씨 집안의 할머니는 남동생과 친척들은 김포에서

꽤 땅이 있고 선산이 있는 등으로 보아 최소한 그 가문이 양반이었거나

부유한 위치였음에는 틀림없고 그런 집안과 혼인을 했다는것은 우리 집안도

비슷한 위치의 가문이었다는 것인데 어째서 우리 아버지 세대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받은것 없이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여 현재 나름 자수성가 한 것을 보자면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서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집안의 몰락 수준에 해당하는

뭔가 많은것을 잃은 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제부터 우리 아버지는 물론 큰아버지 고모님들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많이 여쭤봐야겠다.



다음은 내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소설 아리랑의 한페이지를 올려본다.

원작가님의 동의를 얻지는 않았으나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ㅠㅠ


   이 페이지에서 중요한 부분은

   "인정은 선인에게 베풀 때 선이지 악인에게 베풀면 악이 될 뿐입니다."

   라고 송가원이 말한 부분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 관련하여

 현 이재명 성남시장의 말씀이 떠올려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또 나 자신도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다.



   유격전법의 사대 기본 지침.



이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다.

처음으로 밀려온 개인적 감동의 부분이다.


소설의 인물과 나 자신이 격렬하게 동일화되는 부분이다.

물론 매우 감동적으로!!


이 부분이 어째서 조선이 일본에게 간단히 지배당하였는가? 에 대한

핵심적인 정답이 되는 부분인 것 같다.

을사오적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의 병폐를 지적한 부분이다.

프랑스와 같은 유럽에서는

지식인(부르주아, 일반 민초가 아닌 교육받고 성찰된 시민)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왕족과 귀족에 대항하는 피의 혁명을 일으켜

민주주의를 스스로 만들어 낸 반면

조선은 자신의 일신만을 생각하여

간단하게 적극적 또는 수동적으로  친일화 되었다.

그리하여 나라의 가장 바탕을 이루는 수천만 민초들만

대학살을 당한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유태인들이 독일나찌에 당한

학살을 더 많이 알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민족이 일제에 당한 학살과 수모가

훨씬 큰데 그것을 우리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

더욱 안타깝다.